아빠의 침대에 바쳐진 딸

GoodNovel 완결

약혼자와 절친이 먹인 약 기운에 취해 연성 최고 재벌의 초호화 스위트룸에 억지로 끌려 들어가면서 나는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네.” 약혼자는 내가 죽을 때가 되어 헛소리를 한다 여겼는지, 내 턱을 사정없이 쥐어틀었다. “이 년아, 우리 회사의 생사가 이번 프로젝트에 걸려 있어!” “하 회장한테 수년간 품어온 첫사랑이 있다는데, 네 얼굴이 딱 그 여자랑 닮았거든. 그러니까 고분고분 그분 기분 잘 맞춰드려. 프로젝트만 성사되면 너한테도 돈 몇 푼 던져줄 테니까!” 절친도 옆에서 입을 가리며 낄낄거렸다. “맞아. 하 회장님을 모시는 건 네가 전생에 나라를 구해서 받은 복이니까 주제도 모르고 튕기지 마.” 약효가 퍼지자 나는 금빛 문 너머로 사정없이 밀쳐졌다. 다만 가죽 소파에 기댄 채 차가운 냉소를 머금고 있는 나를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대역을 장난감처럼 다룬다는 그 하 회장이, 사실은 내 친아빠였으니까. 오늘, 그들은 제 손으로 나를 아빠 품에 안겨 준 셈이었다. 그리고 내일이면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이다. 진짜 산지옥이 무엇인지를.

챕터 (1)

第1章

약혼자와 절친이 먹인 약 기운에 취해 연성 최고 재벌의 초호화 스위트룸에 억지로 끌려 들어가면서 나는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네.” 약혼자는 내가 죽을 때가 되어 헛소리를 한다 여겼는지, 내 턱을 사정없이 쥐어틀었다. “이 년아, 우리 회사의 생사가 이번 프로젝트에 걸려 있어!” “하 회장한테 수년간 품어온 첫사랑이 있다는데, 네 얼굴이 딱 그 여자랑 닮았거든. 그러니까 고분고분 그분 기분 잘 맞춰드려. 프로젝트만 성사되면 너한테도 돈 몇 푼 던져줄 테니까!” 절친도 옆에서 입을 가리며 낄낄거렸다. “맞아. 하 회장님을 모시는 건 네가 전생에 나라를 구해서 받은 복이니까 주제도 모르고 튕기지 마.” 약효가 퍼지자 나는 금빛 문 너머로 사정없이 밀쳐졌다. 다만 가죽 소파에 기댄 채 차가운 냉소를 머금고 있는 나를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대역을 장난감처럼 다룬다는 그 하 회장이, 사실은 내 친아빠였으니까. 오늘, 그들은 제 손으로 나를 아빠 품에 안겨 준 셈이었다. 그리고 내일이면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이다. 진짜 산지옥이 무엇인지를. 제1화 약 기운이 혈관을 타고 서서히 퍼져나가자 손가락 마디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시큰거릴 만큼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억지로 눈꺼풀을 밀어 올리자 천장에 화려하게 금박을 입힌 붓꽃 문양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씨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이었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내가 입었던 모든 최고급 맞춤 잠옷의 깃에는 늘 저 꽃이 수놓아져 있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탐욕에 찌든 고민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름아, 정보 확실해? 하진석이 오늘 밤 진짜 이 스위트룸으로 온대?” 절친이었던 소여름은 잔뜩 들뜬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기사한테 4천만이나 쥐여 주고 산 정보야. 밤 11시에 정확히 도착한댔어. 문 열자마자 자기 첫사랑이랑 똑같이 생긴 여자가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보면...” 그녀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다 차려진 밥상인데 안 먹고 배기겠어? 하 회장 기분만 잘 맞춰주면 성남의 2조짜리 프로젝트가 우리 차지가 될지도 몰라!” 문밖에서 끊이지 않는 두 사람의 낄낄거림을 들으며 나는 혀를 꽉 깨물었다. 순식간에 비릿한 피 맛이 목구멍을 타고 번졌다. 고민재의 다 쓰러져 가는 회사를 살리겠다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밤을 새웠고 소여름을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로 여겼다. 하지만 그 대가로 돌아온 건, 내 피땀 어린 돈으로 마련한 집에서 두 인간이 몸을 섞었다는 끔찍한 배신이었다. 그럼에도 모자라 이제는 나를 창녀 취급하며 가격표까지 매겨 남의 침대에 바치려 들고 있었다. 위장이 뒤틀리듯 끔찍한 경련이 일었다. 가죽 소파에 파고든 손톱이 그대로 부러졌지만, 그 고통은 속에서 들끓는 분노의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저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내 친아빠가 바로 하진석이라는 사실을. 과거 아빠가 무명 여배우와 바람을 피우자 엄마는 손목을 그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나는 그 길로 집을 뛰쳐나왔다. 그 후로 아빠와 나는 서로의 삶을 간섭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을 지키며 살아왔다. 아빠도 그저 내가 어디 가서 괄시라도 받을까 봐 내 통장에 끊임없이 돈을 넣어줬을 뿐이었다. 그래서 고민재와 소여름은 내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이나 펑펑 쓰며 사는,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고아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토록 겁 없이 나를 거래의 볼모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들은 몰랐다. 아빠가 비록 여자를 밝히고 질 나쁜 인간일지언정, 제 핏줄 하나만큼은 끔찍하게 챙기는 사람이란 걸. 예전에 어떤 재벌 2세가 나를 말로 희롱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집안을 통째로 파산시켜 버린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가 이 쓰레기 같은 두 인간에 의해 발가벗겨진 채 노리개처럼 자기 침대에 바쳐진 내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때가 되면 저들은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것조차 사치라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이다. “참!” 소여름이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하경 그룹 계약만 따내면 우리 결혼식도 올려야지. 다이아몬드 반지는 예전에 하연주가 마음에 들어 하면서도 돈 아까워서 못 샀던 그 모델로 하자.” 고민재가 사랑스럽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그래, 하연주를 팔아넘긴 돈으로 네 반지 사줄게.” 나는 미동도 없이 천장만 응시했다. 내 시선 끝에 맺힌 서늘한 살기가 당장이라도 얼음처럼 쏟아질 것 같았다. 정보는 정확했다. 오늘이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니 아빠는 틀림없이 이곳에 올 터였다. 엄마가 목숨을 끊었던 이 방을 그는 매년 찾아와 추모했으니까. 해마다 오늘이면 수많은 이들이 아빠에게 여자를 상납해 왔지만 올해의 그 ‘서프라이즈'는 하필 나였을 뿐이었다. 이내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고민재가 성큼성큼 다가와 내 머리채를 사정없이 움켜쥐었다. 두피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하연주, 날 탓하지는 마. 빽도 돈도 없이 천하게 팔려 가는 네 주제를 원망해야지. 오늘 밤 넌 하 회장님 손에 놀아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분 기분만은 완벽하게 맞춰드려야 해!” ‘빽도 돈도 없다고?’ 나는 기고만장한 그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고민재, 오늘 밤이 지나고도 네 목숨이 붙어 있길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어디서 감히 헛소리야!” 소여름이 성큼 나서며 내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귓가에 날카로운 이명이 찢어질 듯 울렸다. “빨리 이년 옷 갈아입혀! 하 회장님께서 곧 오신단 말이야!” 소여름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내 겉옷을 갈기갈기 찢어발겼고는 몸이 훤히 비치는 얄팍한 반투명 슬립을 내게 억지로 쑤셔 입혔다. “진짜 싸구려 창녀가 따로 없네.” 만족스러운 듯 내 뺨을 툭툭 치는 그녀를 뒤로하고, 나는 물침대 위에 엎드린 채 뼛속까지 파고드는 굴욕감을 삼키며 주먹을 꽉 쥐었다. 친딸을 발가벗겨서 친아버지의 침대에 바치다니, 참으로 듣도 보도 못한 미친 짓이었다. 제2화 곧이어 나는 고민재와 소여름에게 양쪽 팔을 붙잡힌 채, 마치 죽은 개처럼 질질 끌려 스위트룸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복도 끝자락에는 열 명이 넘는 경호원들이 뒷짐을 진 채 버티고 서서 압도적인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들 앞에 선 우두머리 남자가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나는 단숨에 그의 정체를 알아챘다. 진범준이었다. 5년 전만 하더라도 감히 내게 문을 열어줄 주제도 못 되던 변두리 말단 경호원이었건만, 내가 집을 나와 방황하던 몇 년 사이에 아빠의 총애를 받는 오른팔이 되어 있었다. 고민재와 소여름은 방금 전까지 기고만장하던 태도를 온데간데없이 거두고는 그 자리에 비굴하게 굽신거리는 아첨꾼의 미소를 장착했다. “실장님, 말씀하신 사람 데려왔습니다.” 진범준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무심하게 훑었다. 얼음물에 담금질한 칼날처럼 섬뜩한 그의 눈빛이 이윽고 차갑게 내 위로 떨어졌다. “하 회장님의 규칙, 다들 알고 있겠지? 바치는 여자는 몸이 절대적으로 깨끗해야 한다는 거.” 고민재는 허리를 땅바닥에 닿을 듯 굽힌 채 굽신대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다마다요! 무조건 깨끗하고 말도 아주 잘 듣습니다!” 진범준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침 오늘 하 회장님 기분이 언짢으셔서 화풀이할 장난감이 필요하던 참이긴 해. 다만 이 여자가 제대로 비위를 못 맞추면, 너희 둘도 같이 생매장될 줄 알아.” 고민재는 흠칫 놀라며 나를 거칠게 앞으로 밀쳐냈다. “벙어리야? 실장님께 직접 대답 안 해!”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목구멍 깊은 곳에서 차가운 비웃음을 삼켰다. “너희들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격노한 고민재가 손등으로 내 뺨을 자비 없이 후려쳤다. “이 빌어먹을 년이! 똑바로 대답하라니까 어디서 잘난 체야!” 나는 따귀를 맞고 몇 걸음 비틀거리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쿵 찧고 말았다. 가뜩이나 천 쪼가리에 불과했던 슬립마저 찢어지며 몰골이 말이 아니게 망가졌다. 고민재가 이를 갈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쓸모없는 년! 감히 실장님 앞에서 건방을 떨어?” 마치 한 편의 우스운 연극을 관람하듯 이 소동을 냉랭하게 지켜보던 진범준이 이윽고 다시 입을 뗐다. “회장님은 말 안 듣는 것들을 제일 싫어해. 회장님 앞에서 객기 부리던 년은 뼛가루가 되어 벌써 악어 밥으로 뿌려진 지 오래야.” 고민재와 소여름의 얼굴이 순식간에 백지장처럼 질리더니 일순간 숨소리조차 멎어버렸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서서히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빠는 엄마를 도발했던 그년을 토막 내어 물고기 밥으로 던져버렸다. 그날 이후로 아빠는 여자라는 존재에게 지독한 애증을 품고 온갖 잔혹하고 변태적인 방식으로 짓밟아왔다. 그 끔찍한 악취미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눈가에 억누를 수 없는 광기와 흥분이 서렸다. 나의 이상한 반응은 진범준의 예리한 눈에 고스란히 포착되었다. 그가 살짝 눈을 가늘게 뜨자, 눈빛에 묘한 흥미가 스쳤다. “제법 간 큰 년이야. 보통 여자들은 악어 밥이 된다는 말만 들어도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리는데.” 그는 나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제법 마음에 든다는 듯 말을 이었다. “오늘 밤 회장님 심기가 단단히 뒤틀리셔서 마침 화풀이할 기 센 노리개가 필요하시던 참이었는데, 겁도 없이 덤비는 네 성깔이 오히려 하 회장님 입맛에 맞을 수도 있겠어. 회장님께서 오늘 밤 제대로 기분만 푸신다면, 우리 같은 아랫것들한테도 제법 짭짤한 보상이 떨어지겠지.” 그 말을 듣자마자 고민재의 두 눈에 순식간에 탐욕스러운 빛이 번쩍였다. 내가 반쯤 정신을 잃은 채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정말 진범준의 마음에 들었다고 착각한 모양인지, 고민재는 금세 기세등등해졌다. 그는 거칠게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강제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두피가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단 한 번의 신음도 흘리지 않았다. “실장님, 이 얼굴에 이 몸매면 하 회장님께서도 분명 흡족해하실 겁니다!” 고민재는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더니 어떻게든 진범준에게 연줄을 대보려는 듯 넌지시 물었다. “실장님, 주제넘은 질문인 건 알지만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하 회장님께서 오늘 밤 유독 기분이 안 좋으신 이유가 뭡니까? 듣자 하니 회장님께서 첫사랑을 찾고 계시다던데, 도대체 얼마나 엄청난 미인이길래 그러는 거죠?” “슬쩍 힌트라도 주시면, 저희가 다음부터 회장님 취향에 딱 맞는 여자를 골라서 바칠까 해서요...” 그 순간, 고민재를 바라보는 진범준의 눈빛이 서릿발처럼 차갑게 식었다. 마치 싸늘한 시체를 내려다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회장님의 사생활을 네 따위 쓰레기가 감히 어디서 캐물으려 들어?” 고민재의 낯빛이 단숨에 흙빛으로 변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주제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공포와 찔리는 마음을 감추려는 듯, 분풀이하듯 다시 내게 화풀이를 했다. 퍽! 그의 발길이 내 아랫배를 거칠게 걷어찼다. 뱃속이 뒤틀리고 내장이 꼬이는 듯한 끔찍한 통증에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바닥에 웅크렸다. “천박한 년! 당장 안으로 안 기어들어 가고 뭐 해? 방에 들어가면 발정 난 암캐처럼 바닥을 기고 꼬리를 흔들어서라도 하 회장님 기분을 풀어드려!” 거친 손길에 떠밀린 나는 바닥으로 고꾸라질 뻔했지만 내장이 뒤틀리는 통증을 꾹 참아내며 차가운 문틀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방금 고민재가 물었었다. 하진석은 대체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은 거냐고. 나는 속으로 소리 없이 비웃었다. ‘설상가상이라 그렇겠지.’ 5년 전 엄마가 돌아가신 바로 이 날, 나는 그의 면전에 대고 평생 대가 끊길 거라며 악에 받친 저주를 퍼부었다. 그런데 정말 그 저주가 먹힌 것인지 그가 밖에서 만나온 수많은 여자 중 그 누구도 아이를 갖지 못했다. 유일한 혈육인 딸년은 눈엣가시처럼 엇나가 버렸고 하필 오늘은 죽은 본처의 기일이니 그의 심기가 멀쩡할 리 만무했다. 그런데 그런 남자의 기분을 풀어주겠답시고, 친딸인 나를 창녀 취급하며 제 아비의 침대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는 꼴이라니. ‘하진석,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이 문이 열리고 나를 마주했을 때, 당신이 내게 대체 무슨 변명을 늘어놓을지.’ 제3화 묵직한 자단목 문을 열어젖히자 머리 위로 눈이 시릴 만큼 화려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빛났고 발밑에는 한 발 내딛는 것조차 아까울 만큼 값비싼 수제 페르시안 카펫이 깔려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은은한 침향이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야말로 사람을 압도할 만큼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공간이었다. 이 비현실적인 사치를 눈앞에 마주한 고민재는 금방이라도 눈이 튀어나올 듯 입을 떡 벌렸다. “대박... 벽에 걸린 저 그림은 대체 얼마짜리야?” 소여름의 눈빛 역시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저기 놓인 꽃병 하나만 팔아도 우리 회사 건물 통째로 사고도 남겠어!” 고민재가 더없이 천박하고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이년이 오늘 밤 하 회장님 기분만 제대로 풀어드리면 혹시 알아? 회장님이 우리한테 저런 거 몇 개쯤은 기분 좋게 던져주실지!” 나는 문가에 기댄 채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내 시선이 벽에 걸린 거대한 유화로 향했다. 그림 속에서 다정한 눈빛으로 미소 짓고 있는 여자는 바로 내 엄마였다. 그리고 그 옆 자단목 테이블 위에는 우리 가족의 가족사진이 반쯤 가려진 채 놓여 있었다. 내가 유화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본 진범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경고했다. “그 더러운 눈깔 당장 안 깔아? 너같이 몸이나 파는 천박한 년이 그나마 사모님을 닮은 덕에 호강하는 줄 알아.” 그의 조롱에도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인내심이 바닥난 듯 그가 내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 찢어진 잠옷 사이로 드러난 몸을 훑어내리는 그의 눈빛에는 끈적한 욕망이 서려 있었다. “회장님께서 깨끗한 년으로 대령하라고만 하지 않으셨어도 넌 오늘 내 밑에서 비명이나 지르고 있었을 거야!”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하진석은 수하 관리를 이따위로 하나 보지? 당장 해자에 처박아서 버르장머리부터 고쳐놔야겠네.” 내 말에 격노한 진범준이 손을 치켜들었다. 그대로 내 뺨을 내리치려던 찰나, 고민재의 입에서 억눌린 경악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잠깐만... 이 사진 속에 있는 여자가 왜 어릴 때 너랑 이렇게 똑같이 생겼지?” 그가 사진을 집어 들려고 손을 뻗는 순간,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운 호통이 터져 나왔다. “감히 하 회장님 물건에 손을 대?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곧이어 12센티미터 굽의 빨간 밑창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도도하게 걸어 들어왔다. 차민아였다. 하경 그룹 산하 협력사의 인물로, 예전에 아빠를 유혹하겠다며 제 발로 찾아왔다가 내 눈앞에서 아빠에게 쫓겨났던 여자였다. 다만 그 포기를 모르는 집착 끝에 결국 아빠가 곁에 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는 순간, 고고하던 오만함은 순식간에 독기 어린 질투로 뒤바뀌었다. “이 얼굴은...” 그녀는 오만한 태도로 내 턱을 거칠게 틀어쥐었다. 두 눈에는 어느새 광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천박한 노리개 주제에 어디서 감히 이런 표정을 지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네가 여기 안주인인 줄 알겠네! 당장 무릎 꿇고 대답하지 못해!” 나는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봤다. “그 더러운 손 치워! 네깟 게 감히 날 꿇리려 들어? 날 건드리기 전에 하진석이 널 갈기갈기 찢어 물고기 먹이로 던져주지 않을지부터 계산하는 게 좋을 거야.” 그 말에 차민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그녀는 손을 번쩍 들어 내 뺨을 향해 매섭게 내리쳤다. 내가 휙 고개를 피하자 허공을 가른 그녀의 손이 빗나가면서 차민아는 꼬인 발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우스꽝스럽게 휘청거렸다. “네년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차민아가 발작하듯 악을 쓰자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내가 하진석이 평생을 바쳐도 유일하게 가질 수 없는 여자라고 하면, 믿겠어?” 지난 몇 년간 그가 나를 한 번만 만나 달라고 비굴하게 애원했어도 나는 끝내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도 어찌 보면, 가질 수 없는 사람을 향한 애타는 갈망 아니겠는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방안은 죽은 듯한 정적에 잠겼다. 차민아는 흠칫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빛에 서려 있던 악의가 그대로 폭발했다. “내가 오늘 널 반죽음으로 만들어놔도 네가 계속 그딴 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보자! 당장 이년 잡아!” 고민재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나를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꼼짝 못 하게 짓눌렀다. “차민아 씨, 진정하십시오! 이년은 잘해줘도 기어오르는 막돼먹은 년입니다! 타고난 천성이 글러 먹은 년이니, 원하시는 대로 마음껏 가지고 노십시오. 반병신을 만들어도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소여름도 재빨리 다가와 바닥을 짚고 있던 내 손가락을 구둣발로 무자비하게 짓이겨 밟았다. 손끝에서 심장까지 이어지는 끔찍한 고통에 순식간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차민아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커터칼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쪼그려 앉은 서늘한 칼등으로 내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유일하게 못 가지는 여자? 결국 그 꼴같잖게 예쁜 얼굴 하나 믿고 꼬리나 쳤겠지.” 칼날이 피부에 닿아 스칠 때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전율처럼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검붉은 핏방울 하나가 은빛 칼날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더니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네 이 예쁜 낯짝에 ‘창녀'라고 새겨넣으면 참 볼만하겠어!” 차민아가 높이 치켜든 커터칼이 금방이라도 내 얼굴에 사정없이 내리꽂히려던 순간이었다. 칼날이 코앞까지 닥친 절체절명의 순간, 나는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처절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하진석! 당장 기어 나오지 못해! 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넌 평생 죽어서도 눈 못 감을 줄 알아!” 제4화 내 부르짖음이 끝나자 실내에는 기이할 만큼 무거운 적막이 감돌았다. 이윽고 차민아가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리며 나를 조롱했다. “천박한 년, 회장님을 만나지도 못했으면서 혼자 발정 난 창녀처럼 굴기는! 너 같은 쓰레기가 감히 하 회장님 이름을 입에 올려? 아주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그 순간, 살기가 번뜩이는 그녀의 눈빛과 함께 예리한 칼끝이 내 얼굴을 파고들었다. 감전된 듯한 끔찍한 고통이 순식간에 온몸을 휩쓸었다. “꽉 잡아! 꼼짝 못 하게 누르라고!” 고민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내 손을 짓누르며 내 얼굴을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짓이기듯 처박았다. 손가락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눈앞이 아득해질 만큼 극심한 통증에 순식간에 식은땀이 등을 적셨다. 한때 내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던 남자가 지금은 내 손을 묶어 도살장으로 끌고 와, 망나니의 가장 충실한 공범 노릇을 하고 있었다. 눈가에서 관자놀이까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번졌고 터져 나온 붉은 피가 순식간에 시야를 가렸다. 차민아는 광기에 사로잡힌 듯 미친 듯이 웃어댔다. “이 낯짝을 다 망가뜨려 놔도 네년이 방금처럼 기고만장할 수 있나 보자!” 고민재가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맞장구쳤다. “차민아 씨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얼굴에 글자를 새기고도 분이 안 풀리시면, 나체 사진도 몇 장 더 찍어두시죠. 앞으로 또 어떤 놈을 꼬실 수 있나 보게요!” 소여름도 비웃으며 거들었다. “얼굴만 망가뜨리는 건 저년한테 너무 관대한 처사죠. 아예 홀딱 벗겨서 정문 앞 분수대에 던져버리는 게 낫겠어요. 그래야 감히 차민아 씨를 건드린 대가가 어떤 건지 뼛속 깊이 깨달을 테니까요!” 그들의 광기 어린 환호성을 들으며 목구멍 깊은 곳에서 비릿한 피 맛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들이 내 몸에 남긴 상처 하나하나는 머지않아 그들의 무덤 앞에 세워질 비석의 묘비명이 될 터였다. 아빠의 잔혹한 방식이라면 저들에게 살아서도 지옥을, 죽어서도 지옥을 맛보게 할 테니까. 그 순간, 고민재가 손을 뻗어 내 슬립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나는 마지막 남은 생존 본능까지 쥐어짜며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하지만 고민재의 무릎은 내 척추를 더욱 무자비하게 짓눌렀고 결국 뼈가 견디지 못한 듯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만 발악해. 넌 그저 난도질당할 날만 기다리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니까.” 극도의 수치심이 나를 집어삼켰다. 차민아는 악마 같은 조소를 흘리며 내 몸을 가리고 있던 옷을 무참하게 찢어버렸다. 그러고는 남은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재빨리 라이브 방송을 켰다. “그냥 내다 버리는 거로는 성에 안 차지. 방송을 켜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이 천박한 년이 얼마나 저질스러운지 똑똑히 보여주겠어!” 벼랑 끝에 몰린 절체절명의 순간,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자단목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 너머로, 벼락같은 분노를 뿜어내는 거대한 실루엣이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누가 감히 여기서 함부로 지랄들이야!” 차민아의 얼굴에 서려 있던 광기가 순식간에 환희로 바뀌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든 채 콧소리를 잔뜩 섞어가며 애교를 떨었다. “회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제가 막 회장님 대신 분수도 모르는 이 장난감을 혼내주고 있던 참이었거든요!” 고민재 역시 서둘러 고개를 들더니, 주인을 만난 발바리처럼 꼬리를 흔들어댔다. “회장님! 저희가 회장님의 첫사랑과 똑같이 생긴 여자를 특별히 구해왔습니다. 아주 깨끗한 여자입니다! 부디 저희의 정성을 봐서라도 성남 프로젝트에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아빠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의 시선이 사람들을 헤치고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내게 꽂혔다.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된 내 얼굴을 똑똑히 확인한 순간, 그를 감싸고 있던 제왕 같은 위압감이 순식간에 산산이 무너졌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경악한 나머지 말을 잃은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며, 지독한 조소가 서린 냉소를 지어 보였다. “하진석, 제 아내를 죽이고 딸까지 내다 버린 개만도 못한 놈! 네가 한발만 늦었어도, 넌 평생 대가 끊긴 채 살아야 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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