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이혼한 아내가 되었다

GoodNovel 완결

결혼 8년 만에 나는 할아버지로부터 나와 마피아 조직에 몸담은 남편에게 남긴 수백억 원대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다. 그런데 변호사가 인수인계 절차를 밟던 중에 우리가 실질적으로 부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수백억 원대 자산은 오직 나 혼자만 상속받을 수 있다고 했다. “강서연 씨, 시스템에는 1년 전에 이미 이혼하신 걸로 나와요. 남편분 주지언 씨의 법적 배우자는... 소예린 씨로 되어 있고요.” “지금 강서연 씨는 미혼 상태예요. 그러니까 주지언 씨에게는 상속권이 없어요.” 소예린은 주지언이 오래전 외국으로 떠나보낸 첫사랑이었다. 변호사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도 나는 한참 동안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그동안 주지언이 내게 쏟아부은 애정과 보살핌은 전부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원래는 결혼기념일에 임신 사실을 알릴 계획이었다. 결혼 8년 내내 우리가 함께 기다려 온 결과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보니 주지언은 그렇게까지 기다리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괜찮아. 우리 쌍둥이는 아빠가 없어도 괜찮을 거야.’ 기만으로 가득한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은 하나,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챕터 (1)

第1章

결혼 8년 만에 나는 할아버지로부터 나와 마피아 조직에 몸담은 남편에게 남긴 수백억 원대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다. 그런데 변호사가 인수인계 절차를 밟던 중에 우리가 실질적으로 부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수백억 원대 자산은 오직 나 혼자만 상속받을 수 있다고 했다. “강서연 씨, 시스템에는 1년 전에 이미 이혼하신 걸로 나와요. 남편분 주지언 씨의 법적 배우자는... 소예린 씨로 되어 있고요.” “지금 강서연 씨는 미혼 상태예요. 그러니까 주지언 씨에게는 상속권이 없어요.” 소예린은 주지언이 오래전 외국으로 떠나보낸 첫사랑이었다. 변호사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도 나는 한참 동안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그동안 주지언이 내게 쏟아부은 애정과 보살핌은 전부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원래는 결혼기념일에 임신 사실을 알릴 계획이었다. 결혼 8년 내내 우리가 함께 기다려 온 결과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보니 주지언은 그렇게까지 기다리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괜찮아. 우리 쌍둥이는 아빠가 없어도 괜찮을 거야.’ 기만으로 가득한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은 하나,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제1화 8년을 함께 산 남편이 1년 전에 이미 나와 이혼했다는 말, 그리고 법적으로는 이미 다른 여자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나는 변호사에게서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고, 끝까지 이 결과를 믿고 싶지 않았다. 휴대폰이 띵하고 울렸다. 주지언에게서 온 문자였다. [서연아, 나 오늘 귀국해. 새로 나온 가방도 사 왔어. 회사에 일이 있어서 그것만 처리하고 바로 집에 갈게.] 그 문자를 보는 순간, 내 심장은 쿵 내려앉으면서 칼로 마구 찔러대는 것만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 메시지를 보고 분명 뛸 듯이 기뻐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지언은 출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늘 선물을 챙겨 왔으니까. 그리고 나는 지금 공항 로비에 서 있었다. 원래는 주지언을 놀라게 해 주려던 참이었지만 놀라움은 순식간에 충격으로 바뀌었다. 저 멀리 출구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훤칠한 키에 검은 정장을 걸친 그 모습은 주지언의 훤칠한 피지컬을 완벽하게 살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주지언은 곁에 선 여자를 조심스럽게 부축하고 있었고 눈빛에는 다정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배가 부른 채 행복에 겨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로 소예린이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고 온몸이 떨렸다. 주지언과 나는 소꿉친구로 함께 자랐기에, 28년 동안 단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우리 사이의 감정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토록 깊다던 정은 사탕 껍질을 씌운 독약에 지나지 않았다. 1년 전에 무슨 중요한 물건을 한 번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 주지언이 비서를 시켜서 다시 발급받겠다고 했고, 그러고 보니 그때 무슨 서류에 사인을 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건 협의이혼 서류가 확실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심장이 쿡쿡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나는 주지언에게 주려고 준비한 꽃을 꽉 움켜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 정도였다. 그렇게 남자를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꽃다발은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 버렸다. 집에 돌아오자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정신이 통째로 빠져나간 것 같았다. 곧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홀린 듯이 임신 테스트기를 꺼냈다. 검사지에 뜬 두 줄을 보고 있자니 세상 참 얄궂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석 달 전, 나는 혼자 병원에 가서 12번째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결혼한 지 그렇게 오래됐는데도 우리에게는 끝내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주지언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아이가 없어도 사랑을 전부 내게 주겠다고 했다. 앞선 시험관 시술은 전부 실패했고 매번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서 그건 늘 미련으로 남아 있었다. 주지언과의 사랑의 결실을 맺고 싶었으니까. 반년 전 주지언이 출장을 간 틈을 타 미리 보관해 둔 정자와 난자로 12번째 시험관 시술을 했다. 그리고 어제 의사에게 착상에 성공했다는 말을 들었다. 게다가 아기도 아주 건강하다고 했다. 벌써 3개월이 넘었고 아들 하나, 딸 하나 쌍둥이라고 했다. 원래는 결혼기념일에 서프라이즈처럼 알려 주고 싶었다. 그런데 주지언은 이미 다른 여자가 임신한 애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어쩐지 아이가 있든 없든 신경 쓰지 않는다 싶더니, 이미 누군가의 아빠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나더니 주지언의 모습이 문가에 나타났다. 나는 얼른 눈물을 닦은 뒤, 임신 테스트기를 등 뒤로 숨기면서 슬그머니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서연아, 왜 답장이 없어? 무슨 일 난 줄 알고 걱정돼 죽는 줄 알았어.” 주지언은 성큼성큼 다가왔고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면서 주지언의 뜨거운 시선을 피했다. 막 연애를 시작했을 무렵, 주지언에게 토라져서 일부러 답장을 안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주지언은 헬기까지 띄워 도시 전체를 뒤졌다. 물론 그 애정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지금은 그 관심과 애정을 전부 다른 사람에게 주고 있겠지.’ “나... 친구랑 쇼핑하느라. 휴대폰 배터리가 나갔어.” 나는 힘겹게 미소를 짜냈다. 그러자 주지언은 나를 가만히 품에 안았다. 턱을 내 정수리에 얹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앞으로 이러지 마. 알잖아? 나는 너 없으면 안 돼.” 몸이 굳은 채 주지언의 품에 기대 있으면서, 내 마음속은 온갖 감정으로 뒤엉켰다. 바로 그때 주지언의 휴대폰이 울렸다. 주지언은 발신자를 한 번 보더니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서연아, 나 나가서 전화 좀 받고 올게.” 말을 마친 주지언은 나를 놓고 몸을 돌려 베란다로 향했다. 고개를 들어 점점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내 가슴이 저릿하게 아팠다. 몇 분 뒤 주지언은 황급히 돌아와서 외투를 집어 들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처리하러 가야 해. 금방 올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쾅! 문이 닫히면서 주지언의 모습은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손에 쥔 임신 테스트기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자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아가들아, 미안해. 엄마가 온전한 가정을 못 만들어 줘서.’ ‘그래도 엄마가 잘 사랑해 줄게. 가장 좋은 걸 다 가져다줄게.’ 일주일 뒤 유산 정리가 끝나고 여권까지 준비되면, 나는 이 두 아이를 데리고 완전히 떠날 것이다. 주지언, 소예린 그리고 아이까지 세 사람의 행복한 삶을 방해하지 않도록 말이다. 제2화 다음 날 나는 혼자 병원을 찾았다. 아기들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복도 모퉁이에서 익숙한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지언이 소예린을 조심스럽게 부축하고 있었고 얼굴에는 다정함이 가득했다. 아침에 회사에 일이 있다더니, 알고 보니 산부인과 정기검진에 따라온 것이었다. 내 심장은 무거운 망치에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아팠다. 그리고 나는 기둥 뒤에 숨어 두 사람이 진료실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았다. “지언아, 너 정말 그 아이 낳고 싶은 거야?” 주지언의 친구이자 이 병원 의사인 고원재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귀에 꽂혔다. “당연하지. 이 아이는 반드시 낳아야 해.” 주지언의 말투는 단호하고 결연했다. “그럼 강서연은? 어떻게 할 생각인데?” 고원재가 다시 묻자 주지언은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연이는 아이를 못 가져. 예린이가 낳으면 그걸 계기로 우리가 입양하면 되고. 그래야만 이 아이가 떳떳하게 내 후계자가 될 수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이 부르르 떨렸고 심장은 갈가리 찢기는 것 같았다. 주지언은 진작부터 다 계획해 두었던 것이다. 그저 나더러 자기가 다른 여자와 낳은 아이를 키우라고 하려던 것이었다. 입을 틀어막으면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했지만, 눈물은 소리 없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때 검사를 마친 소예린이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걸어 나왔다. “지언아, 나 때문에 곤란하지?” 소예린이 조심스럽게 물었고 얼굴에는 서러움이 가득했다. “다 내 잘못이야. 임신했다는 걸 말하지 말아야 했어. 애를 지우려고 했거든.” 소예린이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이번에 지우면 다시는 아이를 못 가질 거래.” 주지언은 소예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고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네 탓이 아니야. 서연이도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일 거고.” 소예린은 고개를 숙였고 목소리가 잠겼다. “서연 씨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거 알아. 그래도 잘 보이려고 노력할게.” “걱정하지 마. 아기가 태어나면 내가 그 집에 도우미로 들어가서 서연 씨랑 아기를 돌볼게.” 그 말을 들은 주지언이 소예린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렸다. “고생시켜서 미안해.” 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가슴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몇 분 뒤 주지언이 약을 받으러 갔고 복도에는 소예린 혼자 남았다. 옷매무새를 정리한 소예린은 입가에 싸늘한 웃음을 걸고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왔다. “서연 씨, 기둥 뒤에 숨어서 뭐 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나는 입술을 깨물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 숨어서 다 들었죠?” 소예린은 눈썹을 치켜올렸고 눈빛에는 도발이 가득했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더 말을 섞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데 소예린이 앞을 가로막고 실실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눈치가 있으면 알아서 나가요. 나는 주지언의 아이를 가졌으니까 주씨 집안은 분명 내 편을 들 거예요.” “그러면 서연 씨는 결국 쫓겨나는 거고요. 그때 쫓겨나면 얼마나 꼴사납겠어요?” “게다가 두 사람 지금 법적으로 부부도 아니잖아요. 따지고 들면 서연 씨야말로 내연녀인데요?” 말은 점점 도를 넘어섰고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바람에 손톱이 손바닥 깊숙이 파고들었다. “소예린 씨, 지금...” 내가 막 입을 떼려는데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면서 주지언이 돌아왔다. 곧 소예린의 안색이 확 바뀌더니 곧바로 연약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갈아탔다. “서연 씨, 저를 싫어하시는 거 알아요. 그래도 아이는 죄가 없잖아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아이만은...” 그러더니 소예린이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면서 두 손으로 배를 꽉 감싸 쥐었다. 얼굴에는 고통이 가득했다. “예린아!” 주지언이 소리치며 성큼성큼 달려왔다. “서연아, 예린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주지언은 나를 노려보았고 눈에는 분노와 실망이 가득했다. 나는 멍하니 굳어 버렸고 순간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지언아, 나 배가 너무 아파. 우리 아기가...” 소예린이 바닥에 누운 채 눈물을 줄줄 흘렸다. “서연 씨를 탓하지 마. 너무 화가 나서 그랬을 거야...” 주지언은 소예린의 손을 꽉 잡았고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무서워하지 마. 내가 지금 바로 의사한테 데려갈게.” 말을 마친 주지언은 소예린을 번쩍 안아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그 바람에 나는 해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은 다 타버린 잿더미가 된 것 같았다. ‘주지언, 넌 또 저 여자를 택했으니 나도 두 사람을 놓아줄게.’ 제3화 다행히 소예린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의사가 기본 검사를 마친 뒤 주지언이 병실로 데려다주었다. 나는 문가에 서서 주지언이 분주하게 소예린을 돌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치 내가 남의 사이에 끼어든 제3자 같았다. “지언아, 서연 씨 들어오라고 해.” 소예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힘없이 가라앉은 소리였다. 주지언이 나를 한 번 보더니 시선을 피했다. 감히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하는 듯싶었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서연 씨, 지언이를 탓하지 마세요.” 소예린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제가 지언이한테 불러 달라고 한 거예요. 그래도 우리가 제대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나는 입술을 깨물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지언은 내 곁에 앉으면서 내 손을 잡았다. 주지언의 얼굴에는 옅은 죄책감이 어려 있었다.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결국 말을 꺼내지 못하고 삼켰다. “서연아, 몇 가지는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 주지언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나랑 예린이는 접대 술자리에서 다시 만났어. 그때 거래처 사람이 일부러 예린이한테 술을 먹이길래 보다 못한 내가 대신 마셨고.” “그러다 둘 다 취해 버려서 그런 일이 생긴 거야. 이 아이는 그때 생겼어.” 거기까지 말한 주지언은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폈다. 눈빛에는 후회와 뉘우침이 가득했고, 내 손을 잡은 힘도 한층 강해졌다. “맹세할게. 내 마음속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 하나뿐이었어.” “이 일이 너한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 그래도 아이는 죄가 없잖아.” “내 핏줄인데 모른 척할 수는 없어. 걱정 마.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 둘의 아이로 올려서 네가 아이 엄마가 되게 할게.” “그러니까 네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말을 끝낸 서연은 나를 깊이 바라보았고 눈빛에는 기대가 가득했다. 그러자 나는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게 주지언의 선택이구나.’ 주지언은 소예린과 두 사람의 아이를 택한 것이다. 내가 슬프고 아픈 건 주지언의 기만 때문이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는지, 왜 몰래 나와 이혼하고 이혼하지 않은 척 그 잘못을 덮었는지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소예린도 눈시울을 붉혔다. “서연 씨, 정말 일부러 두 분 사이에 끼어들려던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저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이 아이를 지우면 다시는 임신을 못 한대요.” “부탁드릴게요. 아이만은 어떻게 하지 말아 주세요. 네?” 그렇게 말하고 소예린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가슴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나도 곧 엄마가 될 사람이었고 아이가 엄마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나도 알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화 안 낼게요.” 다시 한번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목소리가 최대한 담담하게 들리도록 애썼다. “다 이해해요.” 주지언은 잠깐 멍해졌다. 내가 이 터무니없는 일을 이렇게 쉽게 용서할 줄은 몰랐던 게 분명했다. 예전의 나는 순하고 말을 잘 듣긴 했어도 바람만큼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으니까. “서연아, 정말 이해하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입가에는 씁쓸한 웃음이 걸렸다. “지언아, 우리 다 집안을 위해서잖아. 너한테 후계자가 필요하다는 거 이해해. 마피아 조직으로서 너희 정도 되는 집안이면 누군가는 물려받아야 하니까.” “편하면 예린 씨를 집으로 데려와서 돼. 그래야 나도 마음이 놓이니까.” 내 말이 끝나자 주지언의 얼굴에 놀람과 기쁨이 번졌다. 주지언은 곧바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연아, 고마워.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 주지언은 내 손을 꽉 잡았고 눈에는 감동이 가득했다. 곁에 있던 소예린도 내가 이렇게 쉽게 승낙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멍해 있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더니 얼굴에 도발적인 미소를 띠었다. 나는 그런 소예린을 바라보았지만, 마음속에는 이제 아무런 파동도 일지 않았다. “지언아, 별일 없으면 나는 먼저 돌아갈게.” “집에 가서 방 하나 정리하고 영양사도 알아볼게. 아기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게 말이야.” 주지언은 고개를 끄덕였고 눈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 “응, 들어가 봐.” “이 시기만 넘기면 내가 잘할게.” 같잖은 다짐에 나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려서 병실에서 나왔다. 제4화 저녁이 되자 주지언은 소예린을 집으로 데려왔고 직접 요리까지 했다. 저녁 식사 내내 주지언은 쉬지 않고 소예린에게 반찬을 덜어주고 국을 떠 주었다. 소예린의 입맛을 훤히 꿰고 있었다. “예린아, 이 국 담백해. 딱 네 입맛일 거야.” “자, 네가 좋아하는 생선이야. 많이 먹어. 몸에 좋으니까.”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눈가에 맺혔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밥을 먹었다. 너무 격한 반응을 보여서는 안 됐다. 주지언이 내가 예전과 다르다는 걸 눈치채게 해선 안 되니까. 떠날 계획을 들키면, 주지언은 분명 나를 보내 주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나는 주지언의 아이를 가진 몸이었다. 이것만은 절대 알려서는 안 됐다. “지언아, 이렇게 챙겨 주면 서연 씨가 화내지 않을까?” 소예린이 나를 힐끗 보며 일부러 말했다. 그러자 주지언은 잠깐 멈칫하더니 급히 해명했다. “화 안 내. 예린아, 넌 지금 임산부잖아. 영양가 있는 걸 많이 먹어야 해. 서연이도 여자니까 네 사정을 이해할 거야.”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저녁 식사 뒤 나는 혼자 정원을 걸었다. 정자에 막 다다랐을 때 소예린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서연 씨, 혼자 산책이라니. 기분 안 좋으세요?” 소예린은 내 맞은편에 앉았고 얼굴에는 도발이 어려 있었다. “진짜 잘도 참으시네요. 남의 애까지 키워 주겠다면서 나갈 생각은 없나 보네요?” 나는 소예린을 한 번 흘겨보고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려고 했다. “거기 서요!” 소예린이 갑자기 손을 뻗어 나를 가로막았다.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내 침묵이 소예린을 더 화나게 만든 게 분명했다. 소예린이 나에게서 보고 싶었던 건 발작과 분노와 히스테리였을 텐데, 나는 그중 어느 것도 보여 주지 않았다. 뱃속의 아이를 무기 삼아 나를 자극할 수 있으리라 여겼겠지만 그것도 통하지 않았다. “강서연 씨, 다 연기죠? 아무렇지 않은 척, 상관없는 척하는 거. 세상에 어떤 여자가 자기 남편이 딴 여자랑 낳은 애를 기꺼이 키우겠어요?” “왜 화를 안 내요? 왜 주지언이랑 싸우지 않아요? 왜 그렇게 마음이 넓은 사람인 척해요? 진짜 위선적이에요!” “혹시 그렇게 대범한 척해서 지언이한테 죄책감을 심어 놓고 보상받으려는 거예요?” “그건 보상이지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 없는 결혼을 붙들고 있다니, 진짜 불쌍하네요!”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울음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했다. “참, 내 뱃속의 애는 지언의 애가 아니에요. 근데 지언이 애를 못 가져서 환장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거짓말을 하나 지어냈더니 그대로 믿던데요?” 나는 충격에 말을 잃었다. 막 무슨 말을 하려는데 소예린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나를 힘껏 밀쳤다. “내가 지금 보여 줄게요. 주지언 마음속에서 누가 제일 중요한 사람인지.” 그러고는 일부러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럽게 신음하기 시작했다. “배가, 너무 아파요...” 소예린은 두 손으로 배를 감쌌고 하체에서 점점 핏자국이 배어 나왔다. 나는 겁에 질렸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 여자가 왜 피를 흘리는 걸까?’ 소리를 듣고 달려온 주지언이 그 장면을 보더니 안색이 확 변했다. “예린아!” 주지언은 급히 소예린을 품에 안았고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보았다. “서연아, 예린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아무것도...” 내가 고개를 저었지만 소예린이 말을 끊었다. 남자의 품에 기댄 채 서럽게 울면서 말했다. “지언아, 나 괜찮아. 서연 씨 탓하지 마. 서연 씨가 나를 싫어하는 거 알아. 내 아이는 더 싫어하고...” 그 말을 들은 주지언은 더욱 화가 났다. 주지언은 나를 거세게 밀쳐 내고 소예린을 안아 든 채 황급히 자리를 떴다. “서연아, 너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예린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바닥에 주저앉아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은 싸늘하게 식었다. 그날 밤 주지언은 돌아오지 않았고, 넓디넓은 저택에는 나 혼자만 남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였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나를 믿지 않던 주지언의 얼굴과 소예린의 득의양양한 웃음만 가득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내 짐을 전부 캐리어에 넣었고, 집 안에서 나와 관련된 물건은 전부 깨끗이 치웠다. 정리를 마친 나는 캐리어를 끌고 저택을 나섰다. 문을 닫는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 한 번 돌아보았다. 이곳은 한때 나와 주지언의 집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떠나기 전에 나는 이윤혁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변호사님, 자산 정리는 다 끝났나요?” [다 됐어요. 서연 씨. 돈은 이미 계좌로 입금됐고요.] [여권도 준비돼 있어요. 스위스 부동산 매입도 마무리됐어요. 모든 준비가 끝났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네, 감사드려요. 저는 이제 출발할게요.” 전화를 끊고 무심코 인터넷 기사를 보게 됐다. 헤드라인 기사마다 주지언이 산부인과에서 소예린을 챙기는 소식이 도배되어 있었다. [마피아 보스 주지언은 소문난 아내 바보] 그렇다. 나는 주지언과 몇 년을 함께 살았지만 바깥세상에는 한 번도 알려진 적이 없었다. 공개적으로 인정받은 자리 하나 없었다는 것이, 어쩌면 진작부터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주지언은 소예린의 거짓말을, 그러니까 자기 아이를 가졌다는 그 말도 진작 알고 있었으면서 모르는 척했을 뿐인지도 몰랐다. ‘무엇을 위해서였는지는 본인이 알겠지.’ 마피아 보스씩이나 되는 그토록 영악한 사람이 그런 조잡한 거짓말을 의심하지 않았을 리 없으니까. 그러나 진실이 무엇이든 이제 상관없었고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윽고 나는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적어도 내게는 아이가 있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주지언의 연락처를 전부 지운 뒤 몸을 돌려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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